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입니다.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가 식민지배를 벗어난 1945년 8월 15일을 기념하는 날이죠. 한국은 5대 국경일 중 무려 2개가 일본과 직접 연관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경일에서 특정 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렇게 큰 경우는 한국 이외에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8월 15일은 한국에 쓰라린 상처를 안긴 일본에서도 기념합니다. 일제가 패망한 날이지만 일본인들은 '패전일' 대신 '종전기념일'로 부르고 있죠.

때문에 한국과 일본 정부 모두 이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진행합니다. 한국에서는 경축행사를, 일본에서는 전몰자 추도식 등을 거행하죠. 기념행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집단 기억의 재현이자 재생산의 장이 된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정부가 공식적으로 주도하는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매년 광복절을 앞두고 총리 등 사회지도층의 야스쿠니(靖国)신사 참배 여부나 발언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의 공식적 행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 미디어나 통계 기관들도 이맘때면 전쟁과 관련해 특집방송을 내보내거나 여론 조사 결과를 내놓습니다. 여론 조사는 일본인들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하는지 참고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늠자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침략" 일본인 6~70%→40%대로 줄어




지난달 '일본여론조사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태평양 전쟁과 중·일 전쟁을 일제의 침략전쟁이었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46%였습니다. 13%는 '자위를 위한 전쟁', 3%는 '아시아 해방전쟁'이라고 답했으며 '모르겠다'는 응답은 32%였습니다. 이는 응답자의 절반가량인 46%가 과거 전쟁을 침략으로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 그보다 많은 나머지 48%가 침략전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2013년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조사에서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는 응답 33%, "침략이었다"는 응답 45%와 비교한다면 큰 차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고케쓰 아쓰시 야마구치대학 교수에 따르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국민 중 전쟁을 침략 내지는 침략적 성격의 전쟁이었다고 보는 이들은 6~70% 정도로 우세했습니다.

전쟁피해국에 대한 사죄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국 퓨리서치 센터와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일본 정부가 전쟁 피해국에 행한 사죄가 "이미 충분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는 곧, 일본이 사회적으로 과거에 비해 우경화가 진행된 상태라는 데 대한 방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 시작된 우경화와 '역사 수정주의'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크게 불거진 건 그리 오래 전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짧게 잡아도 30년 전인 1990년대 이미 일본은 수면 아래에서 우경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카노 고이치 조치대학 교수에 따르면 주목할 시점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라는 시민단체가 발족한 1996년 전후입니다. 발족 당시 새역모에는 역사가는 없고 작가나 고바야시 요시노리 같은 만화가들만 있어 일본 사회와 학계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죠. 일본 리버럴 세력들도 경계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본 우익세력과 정권의 중추가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은 이 단체에서 받아들인 부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역모를 만든 건 이보다 1년 앞서 만들어진 '자유주의사관 연구회'라는 곳입니다. 일본의 기존 역사기술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며 등장했는데 여기서 '자유주의'란 흔히 말하는 정치사상적 자유주의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이들은 일본이 근현대에 벌였던 모든 전쟁을 침략으로 볼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 자유주의 사관은 '역사수정주의'라고도 불려왔는데, 이들 주장 핵심은 일제의 전쟁은 "침략이 아닌 아시아 해방을 위해서"였다는 겁니다. 새역모가 주도해 2001년 내놓은 후소샤 역사 교과서는 일선학교에서 거의 채택도 되지 않는 등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인터넷의 보급과 맞물려 수정주의 역사관을 대중문화 쪽으로 침투시켰죠.

그리고 정치권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1997년 '일본회의'에 이어 자민당 소장파들이 만든 '일본의 전도와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의원 모임'이 조직적으로 새역모를 지원하기 위해 생겨났는데 당시 사무총장이 현 아베 신조 총리입니다. 이 모임은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를 부정하고 독도 영유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음은 물론, 일부 구성원은 일본의 핵무장을 주장할 정도로 극우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2차 아베 내각 출범 당시 각료의 50% 가량이 소속 돼 있었고 아베 총리는 지금도 이 단체의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즉, 역사 수정주의 시각을 지닌 정치인들이 현재 집권 자민당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죠. 나카노 교수는 일본의 우경화가 고이즈미나 아베 정권 때부터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닌데다 주류 정치인 상당수가 동조하고 있기에 아베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서 끝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우향우 분위기에 기름 붓는 日 미디어

사회의 우경화가 정치로 옮아붙은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일본은 정치 주도로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사회에 그런 분위기를 확산시켜 왔습니다. 여기에 미디어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익 정치가가 앞장서고 미디어를 이용해 조금씩 사회에 영향을 주는 거죠. 일본 사회의 우경화를 부추기는 매체는 많지만, 대표적인 예로 산케이신문을 들 수 있습니다. 새역모 교과서 출판사로 유명해진 후소샤, 후지TV와 함께 후지산케이그룹에 속해 있는 산케이신문은 일본의 신문 중 이념상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매체입니다. 일본의 신문사 중 메이저라고 불리기는 어려운 발행부수를 가졌지만, 일본의 우익 언론인과 평론가들의 가장 큰 활동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산케이 신문은 우익적 성향을 띠기 쉬운 환경에 있었습니다. 종전후 아사히와 마이니치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전쟁을 찬양했던 세력에 대한 비판과 규명을 하려 함에 따라 궁지에 몰렸던 전범기업들이 1958년에 인수한 언론이기 때문이죠. 산케이신문과 후소샤는 '세이론(正論)'이란 월간지를 간행해 왔는데, 이 세이론 역시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일본 우익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 친미보수 정도에 머물렀던 세이론의 논조는 우익 성향이 강해지며 현재는 개헌, 황실의 찬미, 아시아에 대한 멸시, 군사강국으로의 전환 등에 대한 반복과 부연으로 압축해 설명됩니다.

이들 우익 미디어들은 선거철에는 아베노믹스 등 현 정권의 정책을 홍보하고 선전하는 한편, 정권에 불리한 쟁점은 숨기는데 협력했습니다. 반면, NHK와 아사히 신문은 가장 큰 표적이 됐습니다. 2차 아베 정권은 출범후 NHK 회장에 친정부 성향 역사수정주의자들을 앉혀 통제를 강화했고, 아사히가 위안부 기사의 일부 오류를 바로 잡자 이를 빌미로 위안부 자체가 아사히의 날조라는 식으로 공격을 가했죠.

일본 우경화의 빌미되는 '중국·북한 위협론'

역사문제와 함께 개헌과 재무장을 통한 일본의 군사대국화 조짐은 우경화 논의에서 항상 나오는 화두 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이 같은 행보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데다 군사력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을 일본은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죠. 무엇보다 동중국해에서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분쟁지역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에 대해 고조되는 중국의 공세는 일본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위협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팽창과 군사패권주의는 일본이 개헌과 재무장으로 군사적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존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특히, 일본인 납치 문제는 역사의 가해자로서 반성과 사과를 요구받던 일본이 처음 피해자 입장에 서게 해주었습니다. 우익세력들은 납치 문제를 구실로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부추겨왔고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반도에 대한 멸시 감정을 분출하도록 유도했죠. 특히, 아베 총리의 경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 위협론'을 적절히 활용해 지지층을 결집하며 정권 부양의 도구로 삼아 왔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일본 우경화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중국의 팽창과 북한의 납치문제가 본격화 하기 이전인 30년 전 이미 우경화 조짐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현재 넘쳐나는 혐한 보도와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 등 노골적 배외주의, 거세지는 독도 도발 등을 볼 때 중국과 북한 문제는 일본의 우경화를 촉진한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日, 책임 회피하며 피해자 의식만 부각할건가

매년 8월이면 일본 미디어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날들에 대한 특집 프로그램 등을 내보냅니다. 당시 미국에 의한 원폭 투하가 정당했는지에 대한 여론조사도 곳곳에서 행해지죠. 근래에는 종전 기념일인 15일보다 더 큰 비중을 두는 느낌입니다. 지난 9일 일본 주간지 '프레지던트'는 일본 여론 가운데 14%나 되는 비율이 "원폭 투하가 종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응답했다며 자학사관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원폭의 비인간성과 일본이 지구상 유일한 피폭 국가라는 데 대한 피해자 의식을 표출하는 것이 많았죠.

분명 원폭 피해자 대부분은 전쟁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들이었고 수십만 명의 희생자 중 조선인이 10%에 달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큰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폭이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에 대해선 날선 비판을 가하는 언론과 이에 적극 동조하는 여론의 모습은, 가해국으로서 책임을 지는 데는 인색한 모습과 겹치며 사뭇 이중적으로 다가옵니다.

오늘날 일본인 대다수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며, 이들 상당수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에 대해 무관심하며 책임을 지라는 데 대해서도 부당함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인식의 결여 속에서 일본 정계에 역사 수정주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과거 범했던 죄를 직시하자는 의견을 반일로 몰아붙이고 역사문제를 제기하는 한국에 "건방지다" "우리 덕에 잘 살게 됐는데 괘씸하다"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양국 간 역사적 화해는 영영 소원한 일이 될 겁니다.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일본이 우경화 행보 대신에 역사적 진실과 책임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 전쟁 피해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임을 깨닫길 바라봅니다.

http://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09/0004636030?ntype=MEMORANKING